1989년 겨울, 도쿄 (2부)

By 김상윤 2016.09.08


(1989년 겨울, 도쿄 (1부) 에서 이어집니다)


/ 2016 9 6. 도쿄. 하시모토 카오루

 

 

 하시모토 카오루씨는 언제나 초밥집이 싫다고 생각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 이유는 카오루 씨의 직업병 때문이었다. 카오루 씨는 자신의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연히 일하는 사람에게로 주의가 쏠렸다. 식사를하며 잘 앉아 있다가도 다른 손님이 일어나 나가려 하면 자기도 모르게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하고 외칠 것만 같았다. 카오루 씨는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직업병이 참으로 난감하지않을 수 없었다.

 두 번째 이유는초밥집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어김없이 말을 거는 초밥집 주인아저씨였다. 초밥집 주방장은 언제나 누구에게나걸쭉하게 말을 섞고 싶어했다.

 

 

 카오루 씨는 오늘, 모처럼 어머니와 외식을 했다. 메뉴를 신중하게 고르리라는 마음을 먹고 길거리를 돌아다녔지만, 발걸음은역시나 엉뚱한 곳에 멈추고 말았다. 카오루씨는 결국 그렇게 집에서 제일 가까운 초밥집의 미닫이문을 밀었다.  

 

 

 "어서 옵쇼. 손님, 따님 보너스 타서 지갑이 두둑하시죠?"


 초밥을 만들고 있던 주방장 아저씨가 대뜸 말을 걸었다. 카오루씨는 역시나 잘못 들어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밥집이란 한번들어가면 되돌아 나오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곳이니,

 카오루 씨는 ", , ." 라고 적당히 대답하며 일단 자리를 잡고 앉을 수밖에 없었다. 초밥을먹으러 들어오는 손님에게 다짜고짜 왜 그런 이야기로 말을 거는지 카오루 씨는 이해할 수 없었다.

 

 "탔나요? 에이, 탔겠죠? 보너스."


 초밥 아저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카오루 씨는 거참시끄럽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못 탔습니다."라고 조용히 대답했다. 카오루 씨는 옆에 앉아 있는 어머니의 눈치가보였다

 

 "? 역시 요즘 회사 사정이 안 좋은가?" 초밥 아저씨는 포기하지않았다.

 


 

카오루 씨는 '이런 얘긴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회사에 다니지 않으니까요."라고 조용히 대답했다. 카오루 씨의 어머니는 초밥 아저씨를보며 멋쩍게 웃었다.

 

 "그럼, 아직 학생?" 초밥 아저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닙니다." 카오루 씨가 대답했다.

 

 "그럼 무슨 일 하는데?" 초밥 아저씨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카오루 씨는 자꾸귀찮게 좀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 그게, 아르바이트요." 조용히 대답했다.

 

 "나이가 좀 있어보이는데, 무슨 아르바이트? 구체적으로 가르쳐줘야지." 초밥 아저씨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

 

 ", 그게 그러니까, 이거 했다, 저거했다, 해요." 카오루 씨는 조용히 대답했다.

 

 "호오, 굉장하군. 그러니까, 프리타족이다, 이거지?"


 초밥 아저씨는 이유 모를 반가운얼굴로 말했다.

 

 그러니까 초밥 아저씨의말이 맞았는데, 카오루 씨는 대학 졸업 직후인 90년대부터지금까지 한 직장에서 꾸준히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카오루 씨는 20대때부터 계속해서 아르바이트를 해 왔다.


 물론 카오루 씨도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나서부터는 정식으로 직장을 갖고 싶었지만, 바늘구멍 같은 취업의 문턱을 넘기에는역부족이었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만 해도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시급은언제나 괜찮은 편이었다. 그래서 카오루 씨는 40대가 된지금까지도, 비교적 자유롭고 편하면서도 큰 경제적 어려움 없이 아르바이트만 하며 살아가는 프리터족이되었다

 

 "그 카메라 한 번엄청나게 크네. 적어도 20년은 족히 돼 보이는군요. 허허."


 초밥 아저씨가 카오루 씨와 어머니의 테이블에 놓여있는카오루 씨의 카메라를 보고 말했다

 

 ", . 카메라……."


 카오루씨는 커다란 검은색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한번 만지작거리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초밥 아저씨는 애초에카오루 씨의 대답 따위는 들을 마음이 없었다는 듯, 몸을 홱 돌려 주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카오루 씨는 대학시절 구입한 오래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지금까지도 외출을 할 때면 항상 가지고 다녔다. 목줄을 늘어뜨려목에 걸고 다닐 때도 있었고, 핸드백이나 어느 가방에든 넣어 다녔다.카오루 씨의 유일한 취미는 오래된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 이었고, 카오루 씨의 유일한친구는 1분 후 카메라에서 나오는 사진 속 피사체였다

 

 

/ 2016 9 6. 도쿄. 하시모토 카오루

 

  

 "그래, 이제는 정말, 집에 남자를 데려오는 일이 도통 없구나. 이제 연애는 아예 하지 않는 거니?"


 카오루 씨의 어머니가가게에 들어 온 뒤 처음 말문을 열었다. 카오루 씨는 그 말을 누가 듣기라도 할까봐서 주위를 한번 살피고는어머니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물론 카오루 씨가처음부터 연애와 결혼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위한 1인분의 생활만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활동만 지속해왔다. 언제부터인가혼자가 편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카오루 씨의 인생에서 결혼은 '해당사항없음'이 돼버렸을 뿐이었다결혼이야 하면 좋다고생각 했지만 생활수준이 낮아지는 건 원치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생활수준에 만족할 줄 알게 되었고, 돈보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가 앞섰다. 그리고자연히, 출산과 내 집 마련 그리고 인간관계는 카오루 씨의 인생에서 조용하고 느리게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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