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는 왜 도시바 인수에 실패했을까?

By 월스트릿트레이닝아시아 2017.08.29



  도시바의 몰락 이유를 소개한 (1편: 일본의 자랑 '도시바'는 왜 침몰하는가?)에 이어서, 오늘은 도시바 인수 과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편에서는 도시바가 엄청난 채무를 갚고 기업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짜 사업인 '반도체' 부문을 빼서 만든 자회사 '도시바 메모리'를 매각하려 내놓았고, 여기에 한국의 SK하이닉스와 미국의 베인캐피털 등이 뛰어들면서 결국 ‘한•미•일 연합’ 전선이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된 것까지 소개했는데요,

  그런데! SK하이닉스의 손에 거의 다 넘어온 줄 알았던 도시바 메모리의 우선 협상권이 자기들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웨스턴디지털(WD)이 등장하면서 인수전이 혼잡해졌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기나긴 도시바 메모리 인수전을 종결 짓는 결론이 나왔다고 합니다. 



  지난 8월 27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도시바가, '도시바 메모리'를 당초 우선협상대상자였던 ‘한미일 연합’이 아니라, SK하이닉스가 빠지고 웨스턴디지털(WD)이 포함된 ‘신(新) 미일 연합’에 넘기기로 합의했다고 전했습니다. SK하이닉스가 그동안 사활을 걸고 진행했던 매각 협상이, 결과적으로 물거품이 된 것입니다!



  WD 는 도시바와 일본 욧카이치 공장을 함께 운영하는 등 도시바에 협력관계에 있는 미국 회사인데요,

  도시바 메모리 인수전 초반부터 협력사인 자신들에게 협상 우선권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국제중재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죠.

  지난 5월14일 국제상공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재판소에 “제휴업체인 WD의 동의가 없는 제삼자에 대한 사업매각은 인정할 수 없다”며 매각 중지 중재 신청을 낸 데 이어, 6월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에도 매각 중단을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했습니다.

  이에 맞서 도시바는 WD가 도시바 메모리 매각을 방해해 막대한 피해가 생겼다며 일본 도쿄 지방법원에 우리 돈 약 1조 2,000억 원대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2017. 7. 15) 미국 법원, ‘도시바 매각중단 가처분’ 소송 결정 유보

  두 회사의 싸움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요? 7월 16일 로이터통신을 비롯한 외신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고등법원은 WD이 도시바의 반도체 부문 매각을 잠정 중지시켜달라며 제기한 가처분 신청의 첫 심리에서 결정을 유보했습니다.

  재판을 맡은 해럴드 칸 판사는 대신 도시바가 매각을 마무리하기 2주 전에 WD에 그 사실을 통보하는 중재안을 제안했죠. 이에 대해 WD의 스티브 밀리건 CEO는 "우리의 목표는 구속력 있는 중재절차를 통해 우리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라며 칸 판사의 제안을 환영했습니다.

  그리고 WD와의 싸움이 길어져 매각이 늦어질수록 채무기한을 넘길 위험이 있는 도시바 측도 칸 판사의 제안이 '예비 금지 명령을 발동하는 대신 취할 수 있는 대안'이라며 오는 28일 2차 심문 전까지 매각을 종결하지 않는 데 동의했죠.

  양측이 잠정적으로 합의한 중재안의 상세한 내용은 7월 28일 열리는 심문에서 정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결정은 최종 합의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WD가 이러한 중재안에 동의한 것은 매각이 이뤄지기 전에 14일이라는 시간은 대응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보기 때문이고, 도시바 역시 가능성을 열어둔 가운데 한미일 연합과 협상을 이어가며 WD와도 긍정적인 합의안을 도출하도록 한다는 복안이 있었죠.



(2017.7.28) 도시바, 반도체 매각협상 종결 2주 전 WD에 통지 합의

  블룸버그 통신에 의하면 미국 캘리포니아 고등법원은 29일(현지시간) WD가 제기한 도시바 매각 중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2차 심리에서 “도시바는 매각 결정 2주 전에 WD에 통보할 것”을 최종 명령했습니다. WD가 원하던 ‘매각 중지’ 결정이 내려지지 않아서 일단 도시바는 급한 불을 끄게 되었죠.

  하지만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WD는 미국 고등법원 말고도 국제재판소에도 소송을 낸 상태였는데요, 만일 도시바 반도체사업 인수 우선협상 대상자인 ‘한미일 연합’이 도시바를 최종 인수하게 되더라도 국제중재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무효화될 가능성이 남은 것이죠. 

  그런데다가 통상적으로 ICC(국제상공회의소)의 중재는 대략 1년에서 2년 가까이 소요돼 도시바로서는 큰 위험부담을 안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도시바가 받아냈던 정보 차단 조치도 일부 해제된 상황이었습니다. 앞서 도시바는 "WD가 도시바 메모리 매각을 방해하기 위해 부적절하게 정보를 입수했다"고 주장하며 ‘합작 및 공동 개발에 관련된 정보’를 WD가 열람할 수 없도록 접근은 차단 명령을 받아냈었는데요, 미국 법원의 명령으로 차단조치가 일부 풀리면서 협상 카드가 소진돼 버리는 상황까지 치닫게 된 것이죠.



  이렇게 채무 기한 압박이 있는 도시바를 재판으로 밀어붙인 WD는 결국 도시바 메모리 인수 상 테이블에 앉는데 성공했습니다. 8월 13일 다수의 외신에서 도시바가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컨소시엄뿐만 아니라, WD와 대만 최대 전자업체인 훙하이그룹 등 3곳과 협상하고 있다고 전한 것이죠.

  또한 매각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한미일 컨소시엄과 도시바메모리 간 매각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며, 데드라인(완료 시점)도 분명치 않다”고 말하며 SK하이닉스가 유력했던 판세가 뒤집혔음을 시사했습니다.



1.



"WD: 샌디스크 인수로 인한 자금 조달"


  그렇게 차차 판도가 뒤바뀌면서 도시바 인수에 가장 유력 후보자는 WD가 되었습니다. 다만 WD가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를 인수하기 위해서는 여러 큰 난관을 넘어야 했죠. 우선 가장 큰 문제는 WD가 2016년 플래시 메모리카드 업체인 미국의 샌디스크 인수하면서, 자금 조달 방안이 불투명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낸드플래시 시장 3위인 WD이 2위 도시바 지분을 확보하면, 한국•중국 등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독점 심사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있습니다. 게다가 각국의 반독점 심사에만 1년 이상이 걸려 도시바가 WD를 선택하더라도 내년 3월 매각완료가 가능할지에 대한 확답을 내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죠.

2.


"홍하이: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


  새로운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게 된 대만의 폭스콘(홍하이)도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애초에 '한미일 연합'이 도시바 메모리 사업 인수의 우선협상자 대상으로 추진된 이유가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우려였기 때문에, 대만 기업인 홍하이도 일본 정부가 꺼릴 가능성이 높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스콘은 이전에도 도시바와의 우선 협상권을 놓친 데 대해 "아직 인수 기회는 50% 있다"며 도시바 반도체 매각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왔는데요,

  폭스콘 측은 협상에서 중국 자본의 기업이 자사 컨소시엄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 즉 기술 유출 우려가 없다는 점을 도시바 측에 강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3.


"SK하이닉스: 출자 방식 논란, 도시바 경영 관련 우려"


  지난 6월 우선협상대상자 발표 때만 해도 순조로울 것 같았던 매각 작업이 벽에 부닥친 것에는, SK하이닉스가 전환사채로 자금 일부를 대겠다고 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환사채란, 발행할 땐 해당 회사의 채권이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주식으로 바뀌는 금융상품입니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의 전환사채를 사들이면 당장은 채권자의 지위를 갖지만, 나중에 이 전환사채가 주식으로 전환되면 도시바 주주가 되는 것인데요,

  이에 일본 내부에서는 SK하이닉스가 도시바의 지분을 확보해 경영에 관여하고, 도시바의 기술이 외부로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런 우려를 가진 일본 정부 입김으로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죠.

  도시바는 협상 테이블에서 여론을 핑계로 SK하이닉스가 CB(전환사채) 방식의 투자가 아니라 단순 융자 형태로 자금을 댈 것을 요구했지만, SK하이닉스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박성웅 SK하이닉스 부회장은 8월 1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분 인수를 포기할 것이냐는 질문에 “(지분을 인수하는 방향으로) 계속 협상 중” 이라고 밝힌 것이죠.



  앞서 설명한 것처럼, 매각에 따른 반독점 심사는 6개월 이상 소요됩니다. 이는 즉 도시바가 채무상환 기한인 2018년 3월까지 도시바 메모리 매각을 끝내려면, 8~9월 안에 인수 협상을 완료해야 한다는 것이죠.

  게다가 도시바는 8월 1일 채무초과 상태를 해소치 못한 결과 도쿄 증시 상장 68년 만에 2부로 강등되기도 했죠. 더 이상 메모리 사업부 매각 절차를 늦출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상장 폐지는 모면한 도시바"

  다행히 8월 10일 도시바는 감사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 아라타 (PwC)로부터 지난해 회계연도(2016년 4월~2017년 3월) 및 올 회계연도 1분기(2017년 4~6월) 감사보고서에 '한정' 의견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한정’ 의견은 해당 기업에 사소한 문제가 발견됐으나 전반적으로 감사보고서를 보증할 수 있다는 의미인데요, '적정', '한정', '부적정', '불표명' 등 4가지의 감사의견 부적정 이하의 감사의견을 받으면 상장폐지 사유가 됩니다. 도시바는 2015년 회계조작으로 이미 내부관리가 부적절하다는 '특설주의시장종목'으로 지정돼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 부적정 의견을 받으면 상장 폐지 가능성이 높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한정’ 의견을 받은 도시바는 당장 상장 폐지될 걱정은 사라졌습니다. 다만, 내년 3월까지 채무를 해소하지 않으면 2년 연속 채무 초과 상태를 기록하면 규정에 따라 주식 시장에서 퇴출되는 상황이라는 점은 달라진 것이 없었죠.

  한편, 이번에 확정한 도시바의 2016년도 결산은 순손익이 9,656억 엔(약 10조 225억 원) 적자로, 일본 국내 제조업 분야에서 최대의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또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는 채무 초과액은 5,529억 엔(약 5조 7,000억 원)에 달했죠. 이러나 저러나 도시바가 위기 상황인 것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도시바 인수전 마무리 “SK하이닉스…미•일 연합에 결국 패하다”

  도시바는 결국 도시바 메모리를 당초 우선협상자로 정했던 '한미일 연합' 대신,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이 포함된 '신(新) 미일연합'에 매각하기로 큰 틀에서 합의했습니다. SK하이닉스가 끝내 미•일 연합에 패하게 된 것이죠.

  여기에는 채무기한의 압박을 받는 도시바의 어려운 상황과, 자신들을 포함시키지 않으면 재판을 길게 끌어서 채무기한을 넘기게 하겠다는 WD의 몽니(심술궂게 욕심을 부리는 성질)가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로써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2인자가 되기를 꿈꿨던 SK하이닉스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고, 길고 길었던 도시바 메모리 인수전은 대장정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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