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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중심지, '뉴욕'과 '월가'의 기원

By 박지은 2019.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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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과 월가는 

어떻게 경제 중심지가 되었을까?


뉴욕의 월가(Wall Street)

세계 최대 금융 중심지이자

자본주의 경제의 총아라고 할 수 있죠.


지금 이 순간에도

월가 11번지에 위치한

뉴욕 증권거래소에서는,


무려 21조 달러(약 2.2경 원)에 달하는

기업들의 주식이 거래되고 있습니다.

(2017년 6월 기준)


그런데 뉴욕의 월가는 어떻게

금융과 자본의 중심지가 된 걸까요?





대항해시대, 

네덜란드가 발견한 맨해튼


월가가 위치한 곳은

뉴욕주의 맨해튼 섬입니다.


500년 전 맨해튼 섬에는

원주민들이 강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옥수수와 강낭콩을 경작하고 숲에서 

노루와 곰을 사냥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1524년, 이탈리아의 항해사

조반니 다 베라차노(Giovanni Da 

Verrazzano)가 처음 맨해튼 섬을 발견했죠.


이후 1609년 헨리 허드슨(Henry Hudson)이 

맨해튼 섬을 탐험했고

자신의 이름을 따 맨해튼 섬을 둘러싼 강을 

'허드슨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맨해튼 섬을 처음 발견한 조반니 다 베라차노 ⓒ위키피디아)


맨해튼을 본격적으로 키운 것은

대항해시대의 주역, 네덜란드였습니다.


1621년 네덜란드

아메리카 및 아프리카와의

무역을 목적으로 

서인도 회사를 설립하였고,


1624년 허드슨강 입구에

본격적인 무역 거점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네덜란드의 식민지 총독

페터 미노이트(Peter Minuit)

원주민으로부터 맨해튼 섬을

단돈 24달러에 매입하고,


'뉴 암스테르담'(New Amsterdam)이라 

이름을 붙입니다.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뉴 암스테르담 ⓒ위키피디아)



'월가'와 '뉴욕'의 유래


새로운 식민지 무역의 거점

뉴 암스테르담을 점령한 이후,


네덜란드인들은 식민지 지역과

주거 지역을 나누기 위해

벽을 쌓았습니다.

이것이 (wall)의 시초였죠.


당시 영국은 아메리카에 진출하기 위해

뉴 암스테르담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습니다.


1652년 영국의 정치가인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은,


네덜란드의 해양 무역으로부터

영국 산업을 보호할 목적으로

항해 조례를 선포했습니다.



(올리버 크롬웰 ⓒ위키피디아)


이 조례를 시행한 이후로

네덜란드의 무역 수익이 크게 줄면서

두 국가 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결국

네덜란드영국전쟁을 치릅니다.


이때, 뉴 암스테르담에 세워진 벽은

세월을 거쳐 더 강력해졌고

영국인들의 공격을 막기 위한

방어막으로 쓰이기도 했죠.


이렇게 원주민, 영국인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벽(wall)

월가의 유래가 된 것입니다.



(제임스 2세 ⓒ위키피디아)


참고로 뉴욕이라는 도시의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 아시나요?


맨해튼을 처음 발견한 것은

네덜란드 사람들이었지만

결국 뉴 암스테르담을 비롯한

미국 전역은 영국의 지배를 받습니다.


1660년 당시 영국의 왕이었던

찰스 2세(Charles Ⅱ)는 항해법을 제정해

뉴 암스테르담을 점령하고,


차기 왕으로 즉위한 제임스 2세

(James Ⅱ)에게 그 땅을 주는데,


당시 그가 요크 공(Duke of York)이라는 

작위에 있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따서 

'뉴욕(New York)'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경제 발전의 근간이 된 사건 3가지


뉴욕과 월가가 세계 금융 중심지로

성장하기까지 많은 사건 있었지만,


아래의 3가지 사건은 그중에서도

지금의 뉴욕을 있게 한 중요한 

변환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최초의 은행 

미합중국 은행 설립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은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1783년 11월, 13개 주에서 

독립을 얻게 됩니다.


독립 후 미국 정부의 골격을 갖추는 데

큰 공헌을 한 인물 중 하나는 바로

미국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

(Alexander Hamilton)이었습니다.



(알렉산더 해밀턴 ⓒ위키피디아)


그는 신생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제의 근간을 잘 다져야 하며

특히 상업과 공업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상공업이 발전하기 위해

통일되고 안정된 경제 체계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 그는 곧

국립은행의 설립을 건의합니다.


그리하여 1791년 2월 

미국 최초의 국립은행

미합중국 제1은행(First Bank 

of the United States)이 탄생했습니다.


이 은행의 위치는 지금의 뉴욕보다

조금 아래 위치한 필라델피아였으나

동부권 경제 금융 발전의 시초가 되었죠.


이후 합헌성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으로

20년이 지난 후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최초의 중앙은행이란 의의를 지닙니다.



(미국 최초의 중앙은행 미합중국 제1 은행 ⓒEncyclopedia of Philadelphia)



2) 최초의 증권거래소

뉴욕 증권거래소 설립


18세기 미국은 증권업, 금융, 경제에

앞서가는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유럽의 네덜란드와 영국

경제, 금융의 중심 국가였죠.


미국은 네덜란드나 영국처럼

증권거래소조차 존재하지 않았고,


증권 거래의 형식이나 수수료 등이 

표준화되지 않아서

주식 투자자들은 불편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1792년,

미국 주식 브로커 24명이 월가에 모여

주식 매매 수수료를 0.25% 이하로

받지 않겠다는 내용의 '버튼 우드 협정'

(Button wood agreement)을 맺습니다. 


월가의 무화과나무(Button wood)

아래서 이 협정을 맺었기 때문에

버튼 우드라는 이름이 붙었는데요,


이 협정을 기반으로

1817년 뉴욕 증권 거래위원회라는 

기관이 출범하였고,

 

1863년 지금의 '뉴욕 증권거래소'

(New York Stock Exchage)

정식 승인을 받게 됩니다.



(버튼 우드 협정을 묘사한 그림. The 1792 restaurant에 걸려 있다. ⓒNYSE)


https://cidermics.com/contents/detail/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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